-ation



  





Negotiation



Consideration




Note

근래에 들어 대단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무척 행복하게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역시 근래에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요 사이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내가 발견하지도, 알아채지도, 글로 쓰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무언가 나를 불편하게 했던 많은 것들이 페미니즘을 알고나서야 설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던 TV나 영화를 화가 나서 보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tv 속에서 참 희한한 것을 보았다. 남자연예인(당연하게도) 몇 명이 무리를 지어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중 한 남자가 호텔방에 남아 다른 출연자들의 짐을 정리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화면 아래 뜬 자막은 이랬다.
[멤버들의 짐을 정리해주는(정확하지 않다) X(그 남자의 성씨)엄마]
나는 의아했다. 그는 분명히 남자였고, 짐을 정리했다. 다른 이들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부모님이 자식을 챙기는 일련의 행위로 빗댄다면, 그는 ‘아빠'여야 했다.
어째서 누군가의 짐을 정리하는 역할이 ‘엄마'로 정의되는 것일까.
나는 아주 기가 막히고 또 화가 많이 났다. 이 방송 이후로 tv를 더욱 보지 않는 것 같다.

위 그림 두 장은 나의 아주 소극적인 페미니즘을 담아낸 작업이다.
두 그림 모두 영화의 한 장면인데 첫 번째 그림의 원본(?)에서는 *정숙한 여인이 앉아있는 모습을 상대에게 총을 겨눠 협상을 진행하는 여성으로 바꿨다.
(*정숙한 여성이 페미니즘에 방해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여성은 남자주인공의 미션성공을 위한 조력자나 얼굴과 몸매만을 어필하는 5분 출연 정도의 조연이 아니라,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유일무이한 주인공으로 보이기를 바란다.
두 번째 그림의 원본이 되는 영화에서는 여성이 침대에 앉아 무언가를 고민하는 장면이었는데, 남성이 어떤 옷을 입을까... 하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으로 바꾸었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그래, 물론 화가 나는 일이 아주 많다. 답답할 때도 많고, 이전에는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인간, 작품, 문화 그 외 많은 것들에 실망하는 일도 늘어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페미니스트를 마주하면,  ‘어휴, 그렇게 피곤하고 예민해서 어떻게 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내가 여자라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들,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