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의 이방인은 이미 수도 없이 재현되어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존재들이, 자신의 불안정한 위치성과 낮은 가시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정치적 전략과 감각으로 전환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도 쉽게 흘려들을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 이방인들은 자신의 정치를 통해 혁명 서사를 끌어오거나 강한 연대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 오히려 그런 지대에서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탈락시키는 쪽을 택한다. ‘이방인의 정치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관계와 환경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긴장과 공기의 변화, 불안과 자유가 동시에 흐르는 분위기를 어떻게 포착하고, 어떤 방식으로 시각화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헤테로 한녀’라는 범주와 클리셰로 읽히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이방인의 위치를 취해 보려는 나의 전략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방인의 정치성’을 연구하는 목적은 단순히 그 범주에서 탈주해 정체성 정치를 분석하거나, 그를 통해 더 넓은 연대를 구축하기 위함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쉽게 “그냥 어디에나 있는 뻔한 헤테로 한녀 이야기잖아”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즉 그 범주를 넘어서는 서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데 더 가깝다. 동시에 그것을 경쟁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단순한 클리셰 탈출을, 새로운 정체성 개발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방인의 정치성’ 연구는 감정·관계·정치·분위기의 복잡한 층위를 충실하게 탐구함으로써, “어떤 존재를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게 만들었던 범주 자체가 얼마나 허술하고 빈약한 것이었는가”를 느끼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에 가깝다.
#모녀: 친밀성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방인성
모든 이야기와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에, 그리고 도중에 엄마와 딸 이라는 주제는 내 작품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주변부를 지탱한다. 모녀 관계는 수도 없이 재현된 클리셰적 관계이지만, 바로 그 익숙함 때문에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랑, 의존, 착취, 탈주 욕망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 구조는 충분히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관계는 대중문화, 또는 문학이 재현해 내야 하는 역할로 인식되는 부분도 있다. 미술 내에서는 상징적, 정치적 표상으로 소비되는 경우는 많지만 결국 ‘작은 이야기’로 치부되어 충분히 탐구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떠나려는/남아 있으려는 엄마와 딸들의 복합적인 위치,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서 벗어나려 하는 긴장 속에서, 친밀성 내부에서도 스스로 이방인이 되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되었 다. 또,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숨구멍이 되기 위해 오히려 일정한 거리와 이방인적 위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모녀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여성 작가의 삶과 모성의 복합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은, 정상의 모녀 관계라는 환상을 벗어나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사고의 클리셰를 기꺼이 되풀이하여 수행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상의 모녀' 상 안에는 정말 클리셰밖에 없을까? ‘환상 속에 있는 모녀'라는 클리셰가 정말 클리셰를 잘 수행하는 걸까? 클리셰를 수행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모든 이야기와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에, 그리고 도중에 엄마와 딸 이라는 주제는 내 작품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주변부를 지탱한다. 모녀 관계는 수도 없이 재현된 클리셰적 관계이지만, 바로 그 익숙함 때문에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랑, 의존, 착취, 탈주 욕망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 구조는 충분히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관계는 대중문화, 또는 문학이 재현해 내야 하는 역할로 인식되는 부분도 있다. 미술 내에서는 상징적, 정치적 표상으로 소비되는 경우는 많지만 결국 ‘작은 이야기’로 치부되어 충분히 탐구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떠나려는/남아 있으려는 엄마와 딸들의 복합적인 위치,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서 벗어나려 하는 긴장 속에서, 친밀성 내부에서도 스스로 이방인이 되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되었 다. 또,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숨구멍이 되기 위해 오히려 일정한 거리와 이방인적 위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모녀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여성 작가의 삶과 모성의 복합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은, 정상의 모녀 관계라는 환상을 벗어나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사고의 클리셰를 기꺼이 되풀이하여 수행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상의 모녀' 상 안에는 정말 클리셰밖에 없을까? ‘환상 속에 있는 모녀'라는 클리셰가 정말 클리셰를 잘 수행하는 걸까? 클리셰를 수행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이방인적 글쓰기: 문체 전유와 번역의 전략
지나치게 높은 가시성으로 외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보이게 하기 위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나는 ‘이방인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방법론은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이미 존재하는 다른 작가의 문체를 일정 부분 따라 하거나 빌려 쓰면서 잠시 다른 정체성의 감정과 시선을 경유해 보는 방식이다.
최근 읽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글(데버라 리비, 앨리스 먼로)이 있다. 일상의 평범한 상황 속에서 불편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드 러내는 서사들은 글쓰기가 가진, ‘클리셰도 다시 보자’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또, 특정 문체를 모방하는 행위는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번역과 통역처럼 타인의 언어를 경유하여 자신의 위치를 다시 배치하는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이방인적 글쓰기’가 ‘문체 전유가 표절이 되지 않기 위한 조건’, 즉 문체 를 연구 방법으로 사용하는 매뉴얼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협업자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며 개발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높은 가시성으로 외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보이게 하기 위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나는 ‘이방인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방법론은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이미 존재하는 다른 작가의 문체를 일정 부분 따라 하거나 빌려 쓰면서 잠시 다른 정체성의 감정과 시선을 경유해 보는 방식이다.
최근 읽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글(데버라 리비, 앨리스 먼로)이 있다. 일상의 평범한 상황 속에서 불편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드 러내는 서사들은 글쓰기가 가진, ‘클리셰도 다시 보자’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또, 특정 문체를 모방하는 행위는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번역과 통역처럼 타인의 언어를 경유하여 자신의 위치를 다시 배치하는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이방인적 글쓰기’가 ‘문체 전유가 표절이 되지 않기 위한 조건’, 즉 문체 를 연구 방법으로 사용하는 매뉴얼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협업자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며 개발하고자 한다.
#대중문화: 시각 환경이 만드는 이방인성
사람들은 간혹 클리셰가 된 인물들은 지역성과 국적성의 일치 덕분에 스스로 이방인임을 거의 느끼지 못할 거란 선입견을 가지기도 한다.
이방인성은 단순히 국적이나 거주 지역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접해 온 시각적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가설을 세워 보자. 한국에서 자랐지만, 미국 대중문화 이미지와 서사에 더 강하게 영향을 받아 왔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기 대되는 여성상과 내가 상상해 온 세계 사이의 간극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나 역시 매번 내가 속한, 속할 곳이 어딘지 혼란을 느낀다.
사람들은 간혹 클리셰가 된 인물들은 지역성과 국적성의 일치 덕분에 스스로 이방인임을 거의 느끼지 못할 거란 선입견을 가지기도 한다.
이방인성은 단순히 국적이나 거주 지역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접해 온 시각적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가설을 세워 보자. 한국에서 자랐지만, 미국 대중문화 이미지와 서사에 더 강하게 영향을 받아 왔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기 대되는 여성상과 내가 상상해 온 세계 사이의 간극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나 역시 매번 내가 속한, 속할 곳이 어딘지 혼란을 느낀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권태, 권력, 욕망의 대상이 되는 타인의 위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2003)>는 앞서 #대중문화 에서 설명한 이방인의 감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작 품이다.
나는 영화 속 인물 샬롯이 경험하는 권태와 고독 속에서, 그 감정 뒤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안정성과 권 력의 기반을 알게 모르게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아시아(타이베이, 도쿄)를 여행할 때 마다, 마치 샬롯, 그러니까 동아시아를 처음 경험하는 젊은 백인 여성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샬롯이 느끼는 도쿄 풍경(밤거리, 호텔, 이케바나 클래스, 공원, 신사, 클럽 등)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려 노력하며 그 위치를 욕망한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2003)>는 앞서 #대중문화 에서 설명한 이방인의 감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작 품이다.
나는 영화 속 인물 샬롯이 경험하는 권태와 고독 속에서, 그 감정 뒤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안정성과 권 력의 기반을 알게 모르게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아시아(타이베이, 도쿄)를 여행할 때 마다, 마치 샬롯, 그러니까 동아시아를 처음 경험하는 젊은 백인 여성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샬롯이 느끼는 도쿄 풍경(밤거리, 호텔, 이케바나 클래스, 공원, 신사, 클럽 등)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려 노력하며 그 위치를 욕망한다.
#공원: 이방인이 되는 포털? 통로? 매개자? 중개인? 번역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공원은 중요한 연구 장소로 등장한다. 공원은 단순한 관찰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잠시 다른 위치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통로이자 매개 공간로 이해된다.
→ 공원 연구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공원은 중요한 연구 장소로 등장한다. 공원은 단순한 관찰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잠시 다른 위치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통로이자 매개 공간로 이해된다.
→ 공원 연구
* ‘이방인의 정치성’ 연구는 하나의 주제적 관심에서 벗어나, 내 작품을 내가 만든 이론과 언어로 설명하기 위한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또 특정 정체성 범주에 대한 서술이나 개인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장소,관계, 시각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감각적 경험을 분석하는 예술 연구 모델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