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아이는 자기 생을 쌍둥이형에게 버리러 간다. 미래가 지워진 고만고만한 삶들.
이 삶의 미약하고도 거창한 이점이라고 하면 스스로에게 부여한 기대나 욕구로부터는 편리해질 수 있다는거다.
밧줄로 포박한 모든 생이 ‘얼음!’ 하고 있다면 문보영의 이 글, <하품의 언덕>은 ‘땡!’이다.
하품-아이들의 삶 투신은 ‘나로부터 도망치기’같은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도망치는 것의 반대로 간다.
‘땡!’도 그 길을 따라 반대로 간다. 나를 찾으러 가는 숱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쌍둥이면서 타인인 자의 불편한 삶을 모두 대신해 빨아먹어버리기. 한 입에 털어넣기. 하품-아이는 자신이 그냥, ‘그냥’이라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땡!’ 하고 컵 안에서 쏟겨져 나와 쏟아진 물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이 그저 물임을 알게 되는, 그래서 우리는 모두 멀리서 보면 쌍둥이에 지나지 않고 또 쌍둥이가 될 수 있는, 자유라는 신비를 찾아 그들은 다시 반대로 가고 또 간다.